김숙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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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 산다는 것

관리자
2021-11-18
조회수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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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의사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었으며, 나는 어떤 의사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생각해 보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의사로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의사가 되는 데에만 만족한다면.
하지만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면 자신을 내려놓을 줄을 알아야 한다. 실력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면 다른 의사들보다 훨씬 많이 노력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존경받는 훌륭한 의사가 되고 싶다면 이 모든 것들이 함께 따라주어야 한다. 어떤 의사로 살고 싶은가는 그래서 자신의 욕심이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의사는 환자를 배제한 채 존재할 수 없다. 직접적인 치료 영역뿐 아니라 크게는 환자와 환자 가족에 대한 소통의 방법과 태도까지도 치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사의 철학과 가치관도 중요하다.
의사 가운을 입고 산 지난 세월 동안 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많은 의사들과 대화를 해 보았다. 함께 연구를 하기도 하고 어느 의사로부터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의사가 될 어떤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떤 의사로 살아온 걸까. 나는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어떤 의사로 비쳐졌을까.

내가 의사 면허증을 딴 건 1975년이었고, 1980년에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되고 청주의료원에서 근무하다가 얼마 후 내 병원을 개원하였는데 환자가 줄을 이었다. 그 상태로 병원을 유지한다면 명망도 얻고 병원도 계속 넓혀갈 수 있을 만큼 병원이 잘 되었다.
그런데 가끔 소아과 의사로서의 한계를 느끼곤 하였다.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는데도 불구하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이 세상을 떠나가는데 정확한 원인도 파악할 수 없을 때였다. 아기 부모에게 이유조차 설명해 줄 수 없고, 부모 또한 자기 아이가 왜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했는지도 모른다는 게 참으로 답답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큰 대학병원 의사들에게 조언을 구해도 뾰족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한집에서 3형제가 모두 원인불명으로 죽어간 일이었다. 남자 형제 셋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통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걸 보았다. 그런데 그 아래 네 번째로 태어난 여자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유전병에 대처할 수 없으니 아이들이 선천적으로 문제를 갖고 태어나도 변변한 치료도 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치료를 맡길 병원조차 당시 한국에는 없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이런 아이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나를 생각하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병원이 잘 되고 있으니 그런 특정 질환은 내 소관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뿐이었다. 그 아이들을 살려내지 못했다고 나를 원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유전병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대부분 치료를 포기하고 죽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유전학이 잘 발달되어 있는 미국에 가서 기초 공부를 다시 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미국에 가면 뭔가 대단한 걸 배울 수 있을 거란 기대는 금방 충족되지 않았다. 뉴욕에서의 수련의 생활은 바쁘기만 했기 때문이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해서 미국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지만 유전병에 대한 나의 지적 갈증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신생아 스크리닝 검사를 제일 처음 실시한 닥터 구쓰리의 추천으로 하버드의대 부속병원에 갈 기회를 얻었다.
하버드대학병원에는 치료가 안 되는 전 세계의 아이들이 다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한국에서 평생을 진료해도 볼 수 없을 특수질환 환자들을 보았고 그만큼 엄청난 의학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보스턴에서 유전병 환자를 보았고, 학문적 열정에 가득 차 있던 나는 MIT 공대에 찾아가기도 했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질량분석기를 보여 달라고 부탁했으나 문 밖에서 거절당했다. 다시 생화학연구소로 가서 가스 질량 분석의 기초에 대해 일주일의 유료 수련을 받기도 했다.
피 한 방울로 여러 가지 질병을 동시에 진단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주임교수를 졸라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듀크대학에 파견을 나간 적도 있다. 그곳에서 질량분석기로 실험을 해본 뒤, 100% 정확한 진단이 나오는 이 기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질량분석을 하는 곳이라면 한 군데도 빠지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 뒤 미국 유전학 전문의가 되어 다시 한국 땅을 밟은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설렜다. 아이들을 그냥 떠나보내는 일은 더 이상 없게 할 거라는 각오를 다졌다. 내가 공부한 것들을 마음껏 펼치고 아이들의 소중한 목숨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선 그만한 의료 시스템을 갖춰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보건복지부와 충북대·대덕연구단지 등을 찾아갔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내가 할 수 있는 적절한 일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김숙자소아과>를 열고 환자를 보면서 탠덤 질량분석기를 국내에 들여오기로 했다. 당시 IMF 외환위기로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은행에 다니는 동생 남편의 도움을 받아 순조롭게 일이 진행됐다. 그러나 기기가 한국에 도착하기 직전 나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오른쪽이 마비가 된 나 자신이 너무나 처량했다. 한순간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마음에 절망했지만 다행히 뇌수술 후 고통스러운 재활 치료를 받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병원과 메이오 클리닉에서 수련을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뇌수술로 잠시 보류했던 질량분석기기를 들여왔다. 2000년 국내 최초로 질량분석기를 이용해 신생아 스크리닝 검사를 시작한 것이다. 검사를 하다 문제가 생겨도 국내에는 탠덤 질량분석기를 다루는 전문가가 없었기 때문에 한밤 중 영국으로 전화해 해결하곤 했다. 한 번은 환자 중에 질량분석 결과에 이상 소견이 있어 직접 환아와 부모를 데리고 하버드의대 부속병원 주임교수에게 가서 확진을 받은 적도 있다.
이런 분석 기계로 신생아 대사 검사를 한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검사 센터들이 몰려왔다. 나는 그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시간과 장소를 따지지 않고 가서 질량분석이 무엇이고 어떻게 진단을 하고 또 실제 환자 진료를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강의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조기에 발견해 조기에 치료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무참히 무너졌다. 영업망이 없는 개인 의사로서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검사 센터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정부에서는 6종의 선천성 대사질환 검사에 대해서만 치료와 추적 관찰을 한다. 국내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70% 이상은 이 6종 이외에도 탠덤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광범위한 검사를 받는다. 아기에게 유용한 검사를 해서 뇌손상을 막고 조기에 치료하려는 부모들의 뜻에 따라 사비로 광범위한 검사를 받고 있지만 정작 선천성 대사질환에 대한 관리는 전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좋은 기계로 정확한 검사를 하지만 그런 진단이 조기 치료로 연결이 되지 않거나 잘못 치료되어 평생 짊어지고 가야 될 장애를 입는 경우가 많다.
지금 탠덤을 이용하는 검사는 피만 뽑아주면 돈이 되는 수입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기저기 상업적인 검사 센터가 경쟁적으로 생겨났다. 미국에서 취득한 유전학 전문의나 소아과 전문의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기에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해 장애를 입거나 치료시기를 놓친 아기들만이 소문을 듣고 나에게 찾아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검사를 할 때 25달러 정도의 비용만 들고 검사 결과 이상이 있을 경우 주 정부 산하에 있는 검사 센터에서 재검한 후 확진하고 전문가의 진료로 연결되고 있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치료 시스템이 아닐까 한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건, 오랜 시간 미국을 드나들며 공부한 덕분에 한국에서도 유전질환과 대사질환의 치료가 미국 수준과 비슷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성과를 높이 사고 있는 하버드의대로부터 심포지엄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2012년 초에 받았다. ‘하버드 유전학을 한국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흔쾌히 응하고 2012년 4월 27일에 보스턴으로 향했다.
심포지엄에는 유전성 대사질환 분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캐나다의 찰스 스크라이버, 퀘백의 로젠 블렛, 펜실베이니아의 홈스 몰튼, 미국 NIH의 하비 머드, 내 주임교수인 하비 리비, 심리학자인 수잔 와이즈브렌 그리고 나를 포함한 7명이 참석하여 하루 종일 강연과 토론을 벌였다.
병원을 처음 개원할 당시 유전성 대사질환 환자들을 원인도 모른 채 떠나보내야 했던 내가 세월이 흘러 그 분야에 최고라고 알려진 분들과 나란히 토론을 하고 있다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마침내 내 발표 차례가 되었다. 나는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의사가 되어 편하게 인생을 살고 싶었던 평범한 여자였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런 내가 왜 미국에까지 와서 유전학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유전학을 공부하면서 기초 지식이 부족해서 저질렀던 실수들도 고백하였다. 존스홉킨스대학병원으로 훈련을 받으러 갔다가 분자유전학에 대해 눈을 떴고 그 경험으로 유전병 환자를 보는 시각에 확실한 관점이 생겼다는 이야기, IMF 경제 위기 시기에 남편과 상의 없이 6억이 넘는 텐덤 질량분석기를 구입했다가 철없는 아내로 야단맞은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수련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12년간 진단된 242명의 선천성 대사질환 환자들에 대한 분석과 임상 경력 평가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사실도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한국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것과 환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더 필요하고 선천성 대사질환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의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마무리를 했다.
심포지엄은 성공적으로 마쳤다. 훌륭한 의사들과의 토론과 교류를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의사로서의 내 사명감과 위치를 돌아보게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에도 여러 종류의 의사들이 있다. 단지 의사라는 데에 만족해 안일하게 살아가는 의사들도 있고, 나와 같은 의사들도 있고,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의사들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유전성 질환에 관한 의료 환경이 더 좋아지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노력과 각오만 가지고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는 한국의 2세들을 위해 절실한 관심이 필요하다. 같은 문제를 가지고 태어났을 때, 미국에서 태어나면 정상아가 되고, 한국에서 태어나면 장애아가 되는 이런 차이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시행되고 있는 탠덤을 이용한 선천성 대사질환 검사가 ‘조기 검사, 조기 치료’로 자리를 잡아 장애아가 발생하거나 조기 사망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가 개선되기를 바란다.
한국의 의료 현실과 장삿속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검사 제도를 보면서,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품었던 소아과 전문의로서의 열정과 바람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사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노력, 실력 있는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멈출 수가 없다. 아픈 아이들과 죽어가는 아이들의 울음과 비명 소리를 환한 미소로 바꿔줘야 할 책임과 사명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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