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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운청동 김숙자소아청소년병원 3개월 밖에 못살고 죽을 줄 알았던 중현이가 1100명이 다니는 초등학교 전교회장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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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현아, 엄마는 하늘나라에서 너를 지켜주고 있단다
하루는 낯선 아이디로 이메일이 왔다.
초등학교 1학년인 중현이라는 아들이 아파 중국에서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는 아이 어머니가 쓴 편지였다.
중현이 아빠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중현이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런데 태어났을 때부터 젖을 잘 빨지도 못하고 축 늘어져만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이유 없이 자꾸 토해서 중국의 병원들을 전전했으나
다들 병명을 모르겠다는 대답뿐이었다.
한국의 병원에 와서 MRI와 뇌파 검사를 비롯하여 선천선 대사성 질환 검사까지 했지만 모두 정상이라는 소견이었다.
항경련제 처방만 받고 퇴원을 해야 했다.
답답한 마음에 다른 병원을 수소문하다 우리 병원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중현이 엄마는 아들의 의무 기록 복사본을 가지고 우리 병원을 찾아 왔다.
검사 기록을 보니 놀랍게도 ‘프로피온산 혈증’이라는 유기산 질환이었다.
선천적으로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분해가 되지 않고 몸에 쌓여서
몸을 산성으로 만들고 단백질을 섭취하거나
사소한 감염에 암모니아 수치가 높아져 경련을 일으키는 병이었다.
서둘러 유기산 분석을 다시 시행하고 확진을 받아
저단백 식이요법, 특수분유와 조 효소 그리고 L-카르니틴이라는 약물을 써서
독성 대사물질을 밖으로 배출시키는 치료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아이의 암모니아 수치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항경련제를 끊고도 경련을 일으키지 않았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중현이 엄마는 ‘한국선천성대사성 질환협회’에 가입하여 대사성 질환 캠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같은 아픔과 고민을 가진 부모들과 서로를 위로하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내가 일러주는 식이요법을 꼼꼼히 적어서 먹여야 하는
특수분유의 양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아이에게 적용해 주었다.
그렇지만 중현이는 여전히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언어발달이 늦어
옹알이 수준이었고 집중력이 떨어져 매우 산만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대기실에 환자가 너무 많아 그냥 돌아간 일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중현이는 감기 증세를 보이며 배가 아프다고 했다.
밤이 되자 가래가 심해지며 토하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중현이의 할머니 생신이라 모두 경황이 없었다.
결국 중현이는 입원을 해야 했고,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해서 정맥 수액에 의존해야 했다.
암모니아 수치가 올라가고 혈액과 소변 모두 산성으로 변해 있었다.
입원 3일 후에야 중현이는 안정을 되찾았고,
특수분유를 조금씩 먹게 되어 퇴원을 할 수 있었다.
아이가 한국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중현이 아빠는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다른 직장을 구했다.
사업에 쫓겨 아이를 엄마에게만 맡기고 있었던 게 후회가 된다고 했다.
중현이 엄마는 아이를 통해 발달장애아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서
발달이 늦은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만들고 싶다며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운전을 하고 가다 대형 교통사고가 일어나서 간에 심한 손상을 입고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영안실에 걸려 있는 환하게 웃고 있는 중현이 엄마의 사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이 젖었다.
사고 전날 중현이 엄마가 보낸 이메일을 생각하니 더 가슴이 메어졌다.
“살면서 존경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 안 되는 세상에 위대한 원장님을 만나서 감사합니다. 중현이 병명을 찾아주셔서 감사드리고 언제나 한결같이 환아(患兒)들을 사랑해 주셔서 또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결국 이메일은 중현이 엄마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장례식을 치르고 중현이 아빠는 중현이가 먹는 약들과 이런저런 영양제가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찾아왔다.
“원장님, 아이가 이렇게 많은 약을 먹고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막상 챙겨 먹이려니 뭘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꼭 필요한 약만 제외하고 나머진 없애라고 했다.
그리고 칼로리 계산하는 방법, 특수분유와 일반분유를 얼마나 혼합해야 되는지와 물의 양,
약은 하루에 몇 번을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중현이는 아빠의 보살핌 덕분에 엄마의 부재에도 잘 자라주었다.
지능발달이 늦어 언어구사력도 떨어졌던 중현이는 제법 말도 잘하게 되었고,
집중력도 좋아져서 일반아이들과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정상에 가깝게 치료되는 걸 보면서 나 역시 놀랐다.
중현이를 쭉 지켜보던 사람들은
중현이 엄마가 세상과 이별하며 중현이의 유전병까지 가지고 간 것 같다고 신기해했다.
세월이 흘러 중현이 아빠는재혼을 하셨다.
새엄마도 좋은 사람이라 중현이 치료에 정성을 다했다.
중현이는 더 이상 경련을 일으키지 않는다.
요즘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병원에 오면 될 정도로 중현이의 건강이 안정적이다.
어느새 의젓하게 자란 중현이를 볼 때마다 대견함과 함께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중현이는 다른 프로피온산 혈증 아이들에 비해 잔여 효소가 높은 편이었지만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중국에서 검사를 받느라 진단과 치료 시기가 늦어서
중현이의 성장을 지체시켰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신생아 시기에 스크리닝 검사를 시행해서 일찍 발견했다면
큰 문제없이 건강하게 잘 자랐을 것이다.
더욱이 중현이 엄마가 그런 불상사를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게라도 나와 인연이 되어 중현이를 치료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유전학 공부를 한 보람을 느낀다.
중현이 엄마 또한 다른 세상에서도 중현이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말도 잘 못하던 우리 중현이가 잘 자라주어 고맙다.
어렸을때 그렇게도 고생하고 엄마 속을 태웠는데 이렇게 의젓하게 자랐구나.
보기만 해도 중현이엄마 생각에 눈물이 나고 아빠랑 서있는 우리 중현이
의젓하게 자라서 자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