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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운천동 김숙자소아청소년병원 헌터증후군 소리안나는 울음을 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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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는 태어났을 당시엔 정상이었지만 자라면서 또래에 비해 발달이 늦은 아이였다.
자라면서 점점 배가 불러지자 이상하게 여긴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왔다.
검사를 해 보니 간과 비장이 심하게 커진 상태였다.
입을 늘 벌리고 있다는 부모의 말과 눈밑 주름,
등쪽의 도돌도돌한 피부 병변으로 보아
점액다당류증(粘液多糖類症, mucopolysaccharidosis)
이 의심되었다.
아이의 소변을 미국과 일본으로 보내는 한편 확진을 위해서 피부조직을 떼어 섬유아세포를 키웠다.
그때 당시에 우리 병원에서는 세포를 배양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다.
하루 동안 환자를 보지 않고
동이네 가족과 함께 시험관 아기로 유명한 서울의 한 병원에 가서 피부조직검사(skin biopsy)를 하고 돌아왔다.
시간이 지나 세포가 자랐나 확인을 했더니 모든 세포가 죽었다는 것이다.
다시 서울대학교 신경과 교수에게 부탁을 하여 세포 배양실로 가서 조직을 잘라 섬유아세포를 증식 배양했다.
이번에는 배양이 잘 되어 외국으로 효소 검사를 의뢰하였다.
그 결과, 남자아이에게만 오는 헌터증후군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왔다.
헌터증후군이란,
엄마의 X염색체를 통해서
아들에게만 표현되는 유전병으로 점액다당의 효소가 없어
조직의 점액다당 물질이 축적 됨으로써 골 발달과 두뇌 등 전신에 병변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유전병이라는 말을 듣자
동이 엄마는 자기 때문에 아이에게 그런 병이 왔다는 자책 때문에 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괴로워했다.
이런 이야기가 알려지자 대전을 중심으로 모금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병명을 확진하는 이상의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한국에는 마땅한 치료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 나는 미국에서 소아과와 유전학 전문의 수련을 받았었는데
동이 부모는 이 무렵 자주 국제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에 동이의 상태를 계속 들을 수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어느 날,
동이 동생을 임신했다는 동이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같은 병을 갖고 있는지 산전 검사를 받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가는 중 유산이 되고 말았다.
그 무렵 동이가 갑자기 열이 나서 청주의 우리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충남대학병원의 망년회가 있던 날이었다.
열을 내리기 위해 항생제 주사를 처방하고 망년회가 있는 대전에 갔는데,
담당 간호사로부터 동이의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안타깝고 답답했지만 내가 가기 전까지 일단 응급처치 몇 가지를 지시했더니 다행히 몇 시간 후 안정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듀크대학의 닥터 뮤앤조가 헌터증후군 환자들을 대상으로 효소 치료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이 부모와 나는 작은 희망의 끈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닥터 뮤앤조를 만나기 위해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듀크대학으로 서둘러 향했다.
폭설의 악천후를 뚫고 어렵게 찾아간 닥터 뮤앤조에게 동이도 치료에 참여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 있는 환자들을 치료할 약도 모자라기 때문에 곤란하다며 미안해했다.
먼 미국까지 달려왔지만 아무 소득도 없이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한국에서 손에 땀을 쥐며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동이 부모를 생각하니 두 발이 한없이 무거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런 상황을 설명한 뒤
동이 부모와 상의하여 예전에 모금되었던 동이 치료기금을 주인들에게 돌려주었다.
언제 치료제가 나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돈을 마냥 갖고 있을 순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무렵 다시 동이 엄마가 임신을 했다.
대덕연구단지에서 태아의 산전검사를 받은 결과,
성별은 여자아기에다 X염색체 2개 중 1개가 동이와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보인자(保因者)로 밝혀졌다.
그 뒤 태어난 동이 여동생은 아무 문제없이 잘 자라고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고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동이 부모와는 의사와 환자 이상의 끈끈한 정이 쌓였다.
그 즈음 나는 ‘김숙자소아청소년병원’과 별도로 유전병 환자 치료를 위한 연구소를
운천동에 열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때 자동차 세일즈맨이었던 동이 아빠는 앰뷸런스를 비롯하여 병원 차량을 구입하는 데에
가족처럼 나서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 역시 동이를 위해서라면 24시간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런 길고 지루한 기다림 끝에
한국에서도 헌터증후군 환자들을 위한 효소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동이는 치료를 위해 매주 서울에 가서 1박2일을 보내고 와야 했다.
그런데 동이는 한 달이 멀다 하고 잦은 중이염에 시달렸다.
치료를 하느라 고막에 튜브를 박았다.
그랬는데도 중이염은 반복되었고 박았던 튜브는 저절로 빠져 나갔다.
결국 동이는 잦은 중이염으로 인해 고막이 손상되어 보청기를 착용해야만 했다.
그런 동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마음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특히 동이의 얼굴이 점점 험상궂게 변해가고
잠을 자면서 숨쉬기가 어려워 코를 심하게 고는 걸 보면 더욱 그랬다.
동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작았고, 팔
과 다리의 관절은 굳어서 잘 펴지지도 않았다.
이쯤 되면 짜증도 내고 엄살을 부릴 법도 한데
동이는 여전히 순하게 고통을 이겨내고 참을성도 많았다.
그런 동이는 마치 부처님과 같은 초연한 얼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몸에 주사바늘이 들어오면 아파서 저절로 눈물이 흐르면서도 “아야!” 소리 한 번 입에서 내지 않았다.
“동이야, 아프면 소리 내서 울어도 돼.”
이렇게 말해 주어도 동이는 끝끝내 묵묵히 아픔을 참아냈다.
자기를 위해 어른들이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
얼마나 많이 우는지
잘 알고 있던 아이는 자기가 아파 하면 어른들이 더 힘들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효소 치료를 받게 되면서 동이의 배꼽은 탈장이 없어지고 불렀던 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소변 검사를 해 보니 점액다당 대사물질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동이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이가 머리를 다쳤다는 것이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머리 CT 촬영을 한 결과 다행히 뇌 속에 출혈은 없다고 했다.
매주 효소 정맥주사를 받아야 하는 동이는 혈관이 좋지 않아 더 힘들었을 텐데도 매번 묵묵히 잘 참아 주었다.
그리고 효소 치료를 받으면서 동이는 조금씩 키도 자라서 140cm가 되었다.
여전히 반에선 가장 작은 키지만
치료 전에 비하면 많이 늘어난 것이기에
동이 자신을 비롯하여 동이 부모와 나는 이 수치에도 함께 기뻐하였다.
동이는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학교 공부는 중간 정도이고 친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치료 방법이 생길 때까지는
매주 효소 치료를 받으러 서울에 가야 하고, 그때마다 정맥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래도 동이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일망정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잘 견뎌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