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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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픔을 통해 다른 이의 아픔을 보다

관리자
2021-11-18
조회수 837

충남대학교병원 소아과에서 레지던트 2년차로 근무하던 27살 때였다. 어느 날 밤 갑자기 배가 아파서 잠에서 깼다. 구역질이 났다. 손으로 만져 보니 복통 부위는 명치였다. 약을 먹었는데도 가라앉질 않아 대학병원 응급실로 앰뷸런스를 보내 달라고 전화를 했다. 통행금지가 있을 때여서 이용할 차편도 없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 당직 선생님을 비롯하여 내과 선생님과 몇 명의 의사들이 나를 진찰하고 혈액검사를 하였다.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지만 복통이 너무 심해 진통제를 맞고 바로 잠이 들었다. 두 시간쯤 지나자 복통이 다시 시작되었고 전보다 훨씬 더 심했다. 두 시간 전에 처방되었던 진통제와 진정제를 반만 투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주사액이 들어오자마자 기분이 이상했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폭발하는 것 같은 두통이 밀려 왔고, 눈은 보이지 않고 혀가 굳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파요! 너무 아파요!” 소리 지르고 싶은데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아 “으, 으, 으” 하는 신음소리만 나왔다. 손가락과 발가락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소리는 들리고 의식도 있었지만 말을 할 수 없으니 고통을 전달할 수가 없었다.

주사를 맞자마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응급실 당직 선생님도 당황을 했다. 주사 부작용으로 생각하고 내 머리를 쇼크 체위로 낮게 유지해 주었다가 혈압이 너무 높아지자 머리를 높은 체위로 얼른 바꾸어주었다. 확인해 보니, 아트로핀이라는 약물 대신에 에피네프린이라는 혈압상승제가 잘못 투여된 것이었다. 약병에 일본어로 쓰여 있었던 데다가 앰플 전에 맞은 진통제와 흡사해서 간호사가 착각을 한 것이었다.

산소마스크가 내 얼굴에 씌워졌다. 그런데 당황한 나머지 의사 선생님께서 산소통의 밸브를 틀지 않았다. 나는 말도 못한 채 숨쉬기가 어려워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의사 선생님께서 산소를 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기까지 나는 그 짧은 시간에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는 죽는구나. 가족들이 내가 왜 죽었는지도 모르게 죽는구나.’

급하게 내 몸에 혈압강하제가 투여되었고 심전도도 찍어야 했다. 병원의 여러 의사들에게 비상 연락이 갔다. 26년의 내 삶이 한순간에 막을 내리고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불현듯 마지막 생을 마감 하던 다른 환자들이 생각났다.

‘다른 사람들은 유언이라도 남기고 가는데 나는 유언도 하지 못하고 가는구나.’

응급처치를 받고 난 후 네 시간이 지나자 어쩌면 내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가슴이 덜 답답했고 흐릿흐릿 눈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 동생이 제일 먼저 응급실로 들어왔다.

“언니, 무슨 일이야?”

동생의 놀라고 걱정하는 얼굴을 보면서도 혀가 굳어서 말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내가 동생에게 처음 한 말은 “나 죽을 뻔했어”였다. 죽음의 경계에서 느꼈던 절박함을 동생이 조금이라도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내과로 입원했다. 다음 날이 추석이라서 추석 준비를 해야 하는데 맏며느리인 내가 병원에 입원을 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정오를 지나면서 복통이 간헐적으로 다시 시작되었고 노란 담즙 섞인 구토가 시작되었다. 구토를 하고 나면 복통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누워서 내 배를 진찰해 보았다. 전날 저녁에는 명치끝이 아팠는데 6시간 이상 지나고 나선 오른쪽 아래 맹장 부위가 아팠고 누르면 압통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맹장염에 걸린 것 같았다. 지난 해에 아기를 낳기 위해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었는데, 그 당시 맹장을 제거하지는 않았는지 산부인과 의사실로 전화를 했다.

진료 기록지를 확인한 산부인과 레지던트가 “맹장을 떼지 않았는데요” 했다. 마음이 급했다. 추석 전날이라 그런지 병동의 레지던트에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옆에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간호를 해 주시고 계시는 시아버지께서는 “다른 의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왜 네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느냐?”며 걱정을 하셨다. 곧 바로 수술을 받지 못하면 맹장이 터질 수 있다는 설명을 드렸다. 답답한 마음에 소아과 과장님께 전화를 드려 내가 맹장염에 걸린 것 같다 고 말씀을 드렸더니 과장님께서 대학병원 원장님을 직접 모시고 왔다.

진찰을 받자마자 맹장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옮겨졌고 응급으로 맹장절제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맹장이 터지지는 않았다. 수술을 받기 전에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인지 수술을 한 후의 통증은 참을 만했다. 아팠던 통증이 사라지고 수술로 인한 통증은 진통제 없이도 견딜 만했다.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로 걸어 다녔고 화장실에도 혼자 갔다.

그런데 수술 후 빨리 움직인 탓으로 장이 항문으로 밀려 내려와 결국 치료를 받으면서 외과 선생님으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내가 누워 있던 병동에서는 내가 수술한 줄 모르고 있던 간호사들이 환자가 없어졌다며 나를 찾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쨌든 맹장절제수술 상처는 금방 아물었고, 나는 잠시 먼 나라에 다녀온 것처럼 삶을 새롭게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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